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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3-08-10본문
[KBS] 제주 중학생 살해 피의자 신상 공개될까
제주 중학생 살해 사건 피의자들에 대한 신상공개 여부가 오늘(26일) 결정된다.
제주경찰청은 이날 오전 제주 중학생 살해 사건 피의자인 백 모(48) 씨와 공범 김 모(46) 씨에 대한 신상공개 위원회를 열어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수사 진행 과정에서 공모관계와 계획범죄에 대한 증거가 추가로 확인됐고, 신상공개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확산하면서 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변호사와 교수 등 외부위원 4명과 경찰 내부위원 3명으로 총 7명으로 구성된다.
■ 범죄 잔인성, 공공의 이익 인정될까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대한 특례법에 따르면,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거나, 피의자가 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피의자의 얼굴이나 성명, 나이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신상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재범방지,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 한해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경찰은 강력범죄 피의자 얼굴 및 신상공개 지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잔인성'과 '중대한 피해'에 있어서는 범행 수법의 잔혹성과 흉기 사용 여부, 범행 동기와 치밀성, 2인 이상 공모 여부, 아동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했는지 등을 고려하고 있다.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는 구속영장 발부 여부와 자백, 직접 증거 확보 여부 등을 기준으로, '공공의 이익'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와 동종전과 등을 고려한 재범방지, 범죄예방 등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앞서 경찰은 당초 4가지 요건 중 잔인성과 공공의 이익이 부합하지 않는다며 신상공개 위원회 자체를 열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제주시 조천읍 모 주택에서 발생한 중학생 피살 사건 현장
이에 대해 법무법인 오션의 오군성 변호사는 "가정폭력에서 이어진 가정 내 살인사건이라는 점, 사회적 약자인 아동에 대한 범죄라는 점, 2인이 사전에 공모한 치밀한 범죄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잔인한 범죄'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오 변호사는 "현재 유족들은 재범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우려하고 있다"며 "피의자들은 이미 수차례 유사 전과가 존재해 재범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덧붙였다. 또 "가정폭력이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알려야 할 '공공의 이익' 역시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오션의 추새아 변호사는 "신상공개위원회의 판단이 여론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하지만, 마지막 안식처인 가정 내에서 두 어른의 완력에 의해 죽어갔던 피해자의 고통의 무게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숨진 중학생 A(16)군이 친구들과 웃으며 함께 찍은 사진
■ 신상공개 제도 우려의 시각도…
한편 신상공개 제도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신상공개에 대한 논의는 2009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사진을 지면에 게재하면서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0년 3월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사건(김길태 사건)이 발생하자 국회는 2010년 4월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대한 특례법'을 개정하기에 이른다. 2008년 강력범죄 피의자의 얼굴 공개에 대한 국민의 찬성 비율이 80%가 넘는다는 모 여론조사 역시 당시 법 개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려의 시각이 여전하다. 법원 판단이 아닌 수사기관의 결정으로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의 신상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것이 제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구속영장 심사를 받기 위해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방법원으로 이송되고 있는 제주 중학생 살해 피의자 김 모 씨
경희법학연구소가 발행한 '범죄피의자 신상공개제도에 대한 소고(저자 오대균)'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신상공개 제도 자체가 무죄추정 원칙에 어긋나고, 초상권과 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며, 추후 범인의 재사회화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신상을 공개한다고 해서 범죄가 예방되거나 사회가 얻는 실익이 높지 않고, 피의자 가족에 대한 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부작용으로 꼽힌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이 발간한 '피의자 신상공개 제도에 관한 헌법적 연구(책임연구관 강서영)'에서는 신상공개제도의 만능주의를 비판한다. 사회적 관심을 받는 강력범죄가 보도될 때마다 공개 대상 정보의 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지는데, 이는 범죄의 본질을 왜곡하고 예방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의무인데, 강력범죄 피의자를 대중 앞에 내세워 국가의 중요한 책무를 손쉽게 완료한 것처럼 행세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이번 제주 중학생 피살 사건 역시 수차례 관련 신고와 이상 징후가 있음에도 경찰이 적극적인 검거에 나서지 못했고, 허술한 신변보호 관리까지 드러나며 '예견된 죽음'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상공개 결정 여부를 떠나 제도적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9일 범행 도주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힌 살해 피의자 백 모 씨
해당 보고서는 또 국민 대다수가 피의자 신상공개제도를 지지하거나, 특정 사건에 관해 국민청원 동의자가 많다고 해서 '정당한 공익'이 될 수는 없다고도 진단했다. 이 외에도 신상공개 위원회 위원에 대한 자격이나 요건 등에 대해 근거 법령 등을 통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점, 신상공개에 있어 피의자가 의견을 진술하거나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지 않은 점, 신상공개 시기나 절차 등에 관한 내용이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한편 구속된 백 씨와 김 씨는 지난 18일 제주시 조천읍 주택에 들어가 전 연인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백 씨가 전 연인에 대한 앙심을 품고 김 씨와 공모해 범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리 범행 도구를 구매하고 장갑 등을 사용한 점, 주택 뒤편으로 몰래 들어간 점 등을 근거로 계획 범행에 무게를 싣고 있다. 경찰은 조만간 백 씨 등을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